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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클래스M] 방언에 대한 인식의 변화
2025-04-05 3121
류동현기자
  donghyeon@j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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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어에서,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 어느 한 지방에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방언’의 사전적 의미인데요.


방언은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도구이자 우리 말과 글맛을 살려주는 언어적 자산입니다.


시대에 따라 촌스럽거나, 사라져야 할 언어로 여겨지기도 했고요.


다양성과 고유성,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해야 하는 언어로 여겨지기도 하는 방언!


인문 클래스 시즌3! ‘방언의 종말 2’ 오늘은 우리말의 보물창고! 방언에 대한 인식의 변천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이충훈 아나운서]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온다라인문학센터와 함께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즐기는 인문 클래스 시즌3!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하영우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하영우]

안녕하세요,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하영우 교수입니다.


[진행자]

인문 클래스 시즌3! 하영우 교수님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 나눠볼까요?


[하영우]

오늘은 방언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아나운서님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새로 시작한 사극 드라마가 있는데, 극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기력이 뛰어나고 외모 또한 매우 준수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정해 볼 때, 이 배우는 극 중 어느 지역의 말을 쓸 것 같으세요?


[진행자]

요즘은 드라마의 다양성이 커서 확신할 순 없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표준어를 구사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하영우]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방언을 쓰는 경우가 최근에는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경험상 주인공이 표준어를 중심으로 한 말을 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그 주인공 옆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노비 신분의 조연 배우가 있습니다. 이 배우는 사극 내에서 표준어를 쓸까요, 아니면 전라도 방언 같은 지역 방언을 쓰고 있을까요?


[진행자]

왠지 지역 방언을 쓸 것 같네요.


[하영우]

네, 딱 제가 원하는 대로 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우리는 경험상 이 조연이 전라도 방언처럼 비수도권 방언을 쓸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드라마에서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유독 조연의 방언 배경이 비수도권인 경우가 많은 것은 드라마나 영화의 극적 장치를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비수도권 방언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이 일종의 방언적 차별성을 갖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폄하적 태도가 미디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폄하적 태도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서울말이 우월성을 가진다는 사람들의 인식은 생각보다 꽤 긴 역사가 있거든요.


[진행자]

그럼 조선시대에도 한양에서 쓰는 말이 다른 지역 방언에 비해 우월하다거나 선망하는 태도도 있었다는 건가요?


[하영우]

네, 수도권 지역의 말이 우월성을 갖는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다만 조상님들께서 비수도권 방언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여기에 대해서 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 정승철 교수님의 <방언의 발견>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조선 건국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언과 관련된 기록과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방언에 대한 인식에 대한 역사 여행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영우]

역사 여행의 시작은 조선 건국 직후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건국 시기 즈음 작성된 방언에 대한 기록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ㅣ/가 앞에 와서 /ㆍ/나 /ㅡ/와 결합된 소리는 국어에서 쓰이지 않으나 아이들 말이나 변두리 시골말에는 간혹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국어’라는 것은 조선의 서울이었던 한양 지역의 말을 뜻하는 것이고요, ‘변두리 시골말’은 한양과는 다른 지역의 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시골말이라고 칭한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특별히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나라의 글자에 대해 설명을 하는 데 있어서 지역 방언의 표기 방식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종대왕의 방언에 대한 인식 폭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행자]

지역 방언을 표기하는 것까지 고려했다니, 역시 세종대왕께서는 남다르셨네요. 그럼 이제 시간을 좀 더 지나가 볼까요.


[하영우]

조선 초기를 지나서 17세기 방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제주 방언에 대한 기록인 <탐라지>입니다. ‘탐라’는 제주도의 옛 지명인데요, <탐라지>는 제주 목사,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였던 이원진이 제주의 지리, 역사에 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서입니다. 여기에 제주 방언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의 말은 어렵고 껄끄러우며 (억양은) 앞이 높고 뒤가 낮다...”라고 해서 제주 방언에 대한 인상을 서술한 부분이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 방언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서울은 서나, 숲은 고지, 산은 오름이라 하고...”라는 부분에서 17세기 제주 방언의 어휘도 나타나 있습니다.


[진행자]

‘오름’은 요즘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라 반갑네요. 제주 외에 다른 지역의 방언에 대한 기록은 어떤 게 있나요?


[하영우]

18세기 때 유의양이 남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남긴 <남해견문록>에는 남해에 관한 방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계집애’를 ‘가산아해’, ‘너희’를 ‘늑의’, ‘먹어라’를 ‘묵으라’로 쓴다고 기록되어 있고요, “이런 방언 처엄 들을 적은 귀에 서더니 오래 들으니 닉어가더라”라고 해서 처음에는 이 지역 방언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적응하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진행자]

유배를 가거나 공직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가게 됐을 때, 당시 양반 계층이 그 지역의 말을 배워서 썼던 건가요?


[하영우]

모든 공직자나 유배자가 그 지역의 말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덕무의 <한죽당섭필>을 보면 근무지의 방언을 직접 배운 기록도 있습니다. <한죽당섭필>은 조선 후기 학자인 이덕무가 경상남도 함양군 사근역의 찰방으로 재직할 때 쓴 책인데요, 책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한죽당섭필 中]

“지방의 관리가 되어 사투리를 알면 그 지방의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처음 사근역에 부임했을 때 아전이나 종의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들 또한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착오를 일으키는 일이 많았다. 얼마 지나 나도 사투리를 익혀서 드디어 백성을 대할 때 사투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진행자]

이덕무 선생이 직접 함양 방언을 배워서 쓴 건가요?


[하영우]

네, 맞습니다. <한죽당섭필>의 내용상 이덕무가 원래부터 함양, 그러니까 경남 방언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덕무는 한양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아전이나 종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서울말과 경남방언이 많이 달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상사인 이덕무를 대하기 위해 아전이나 종들이 서울말을 배울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시 함양 지역민을 대해야 했기 때문에 서울 출신 이덕무가 경남 방언을 배워서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당시에 지방에 파견되었던 관리들은 해당 지역의 방언을 배워서 쓰는 것을 이상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서울말과 다른 지역 방언에 대한 편견이나 비하, 부정적인 시선은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는 지금과 다르게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편견 없이 동등한 자격을 가졌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하영우]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고 시절이 바뀌어도 인간의 삶은 아주 큰 틀에서 바뀌지는 않잖습니까. 지금과 비슷하게 서울말에 대한 선망이나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낮은 자존감은 조선시대 때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위백규의 <존재집>을 보면 당대 사람들의 한양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존재집 中]

“어떤 사람은 ‘요즘은 산골이나 바닷가 촌구석 사람 모두 한양 옷을 입고 한양 말을 쓸 수 있다. 이로써 비루하고 속된 풍속을 바꿀 수 있으니 기뻐할 만한 일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기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바탕이 있은 뒤에야 문채를 내고 멀리까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퇴옹(퇴계 이황)이 영남의 발음을 고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진행자]

지금과 비슷하게 조선시대 때도 한양에 대한 동경이나 선망 같은 게 있었군요.


[하영우]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위백규 선생은 이런 행태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굳이 한양의 패션이나 한양의 말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탕이 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해서 방언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퇴계 이황 선생이 한양에서 공직 생활을 하면서도 영남 방언을 그대로 쓴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한양에서 공직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 자기 방언을 감추고 한양말을 배울 법도 한데 자기의 방언적 배경을 버리지 않고 생활한 데 대해서 매우 높이 사고 있다는 점은 위백규 선생이 시대를 앞서서 지역 방언에 대해 평등적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진행자]

본인이 가진 고유 방언을 잘 지키면서 살았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하영우]

네, 그런데 저런 분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존재집의 다른 부분을 보면 “지금은 경음(서울말)을 가지고 향음(지방 사투리)을 놀리고 비웃기 때문에, 한양에 다녀간 시골 사람들이 기필코 경음을 본받으려고 하니 모두 다 잘못된 일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에서 서울말을 안 쓰고 전라도 방언이나 경상도 방언을 쓰면 사람들이 놀리니까 다들 서울말로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죠. 


[진행자]

그럼 당시에 한양 생활을 했던 비수도권 출신들은 자기 방언을 한양 말로 바꾸었다고 봐도 될까요?


[하영우]

네, 저 기록을 보면 확실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때도 지금과 같이 서울말이 중앙어로서 갖는 지위가 분명했던 것 같고요,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비하적 태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덕무 선생이 함양에 가서 함양 방언을 배워 쓴 것처럼, 한양에 간 사람들이 한양 말을 배운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앙어가 갖는 지위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전남에서 나고 자란 전남 방언 화자인데, 대학 진학 때문에 20대 이후에는 서울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남 방언을 특별히 고치려고 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동기들이 전남 방언을 재미있어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호남 방언을 덜 쓰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서울말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울말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아, 그렇군요. 서울말이 갖는 중앙어로서의 지위는 조선을 지나 근대로도 이어지게 되는 건가요?


[하영우]

네, 그렇지만 근대에 들어 서울말이 갖는 지위가 더 커지거나 비수도권 방언에 대한 폄하적 태도가 더 커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대에는 민족 계몽이 일면서 국문 정리가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서 방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방언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방언은 ‘각 지역의 말’ 정도로 인식된 것으로 보이는데, <황성신문>에 실린 ‘언어가정’에서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황성신문 中]

“기내 말씨는 천속하고, 관동의 말씨는 순박하며, ... 호남의 말씨는 내교가 많다.  ... 이처럼 말이 다른 것이 풍토나 기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하니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진행자]

방금 소개한 내용은 각 방언에 대한 인상을 글로 쓴 것인가요?


[하영우]

네, 맞습니다. 기내 말씨가 천속하다는 것은 경기도의 말이 가볍고 쉽다는 것이고요, 관동은 강원도니까 강원도 말은 순박하다 정도로 풀 수 있겠습니다. 호남의 말씨는 내교가 많다고 했는데 이건 말에 내공이 있고 구성지다라는 의미입니다. 100년 전 지역 방언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것인데, 지금의 경기도, 강원도, 호남의 말을 생각해 보면 대체로 결이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오늘 주제가 비수도권 방언에 대한 비하적 시선인데, 조선시대를 지나 근대에까지 아주 두드러지게 지역 방언에 대한 폄하적 태도가 보이진 않는데요?


[하영우]

현재의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시선의 변화는 사실 근대 중반까지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서울말이 중앙어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과 별개로 지역 방언에 대한 폄하적 시선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근대 중반 이후 표준어가 점차 자리를 공고히 하고, 산업화와 수도권 집중화가 진행이 되면서 비수도권 방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크게 일어났다고 생각됩니다.


[진행자]

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표준어가 나오는군요.


[하영우]

실과 바늘처럼 지역 방언을 이야기할 때 표준어는 그냥 필수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봐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공공언어 정책과 관련된 전공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표준어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올바른 언어생활 이런 게 최초 목표가 아니었거든요. 표준어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고요, 이후에는 좀 결을 달리해서 민족 계몽과 함께 학술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서 199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게 됩니다. 그런데 초기의 표준어는 현재처럼 그 지위가 아주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 표준어로 사정한 단어 수는 6000개 정도라서 대중에게 절대적 지위를 얻지 못한 불안정한 상태였고요, 표준어를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정했는데, 당시에 또 외부 인구 유입이 시작되다 보니까 서울말의 경계도 모호해지기도 했었습니다. 


[진행자]

표준어가 지금과 같은 지위가 아닌 상태였다면, 근대 이후에도 비수도권 방언에 대한 태도는 이전과 같았었나요?


[하영우]

그렇다고 보긴 힘듭니다. 근대를 지나 산업화 시대로 진입하는 사이 표준어와 지역 방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소 급속하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6.25 이후에 대한민국은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는데, 이때 사투리를 전근대적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하고요, 표준어가 중심이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60년대 <고운말 쓰기 운동>입니다. <고운말 쓰기 운동>은 비속어나 외래어 사용 같은 걸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정책이기도 했는데, 배제해야 할 대상에 사투리 그러니까 방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 운동과 관련해서 웃지 못할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운말 쓰기 운동 관련 기사 中]

“‘고운말’을 골라 써서 메마른 세태를 순화시켜보자는 색다른 언어순화운동이 전북 금산군 벽촌 어느 조그마한 국민학교 어린이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욕설이나 사투리를 쓸 때마다 들은 사람이 지적, 성적표에 기입해서 지적된 사람은 매일 방과 후에 교장 선생님과 함께 교정의 풀 뽑기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하영우]

이 기사는 [언어 순화 운동]이 전북 금산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때 당시에 웃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사투리를 쓰게 되면 선생님께 신고를 했었는데요,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 담임 선생님께 자기 아버지가 사투리를 썼다고 고발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끼리도, 부자지간에도, 사투리, 즉 방언 사용을 용납하지 못했던 거죠.


[진행자]

이런! 교장 선생님을 벌해야 할 담임 선생님이 꽤 곤란했겠는데요?


[하영우]

교직 생활이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방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람들에게 점차 스며드는 와중에 1970년대 산업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때 또 비수도권에 속한 지역 방언과 관련된 악재가 생겨나게 됩니다. 산업 근대화가 되면서 도로/교통이 발달하게 되니까 방언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지역 간 경계가 약해지게 되고요, 산업화로 인해 수도권 집중화도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이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이전과는 다른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되게 됩니다. 


[진행자]

교수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방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하영우]

수도권 집중화가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문화가 ‘서울 중심’이 되다 보니까, 말 역시도 ‘서울 중심’이 되게 되고, 서울말을 기반으로 한 표준어도 이전과는 다른 공용어로서의 지위를 아주 확고하게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국어순화 운동이나 바른말, 고운말 같은 언어문화 활동은 외래어 순화뿐만 아니라 방언 사용 지양과 표준어 지향성을 보다 강하게 부추기게 됩니다. 표준어의 지위가 강해지면서 방송 같은 각종 미디어도 서울말 중심의 표준어 사용이 강화되거나 규정화되고, 이것이 전국에 송출되면서 전 국민에게 표준어가 빈번하게 노출이 되고, 표준어 사용이 공식화, 일상화가 되기 시작한 것이죠.


[진행자]

그런데, 매스미디어에서 사용되는 표준어가 정말 방언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하영우]

네,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예전에 녹차로 유명한 보성 지역에 방언 조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요, 인터뷰하다가 좀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50대 보성 토박이 화자와 이야기 중이었는데, 본인이 어렸을 때 마을 어르신들이 방언 사용이 너무 심해서 일부는 못 알아듣기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동네에 TV가 들어오고, TV 보급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른들의 방언이 많이 바뀌었고, 본인도 그런 것에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

미디어가 방언을 잠식해 갔을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이군요.


[하영우]

맞습니다. 정리해 보면, 근대 산업화와 수도권 집중화, 각종 언어 순화 사업, 그리고 표준어의 공식성과 대표성 확대로 인해서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표준어와 지역 방언의 지위 차가 현격히 벌어졌으니까요.


[진행자]

그런데 최근에는 비수도권 지역 방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예를 들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방언을 직접적으로 쓰기도 했잖아요?


[하영우]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 방언에 대한 인식이 예전에 비해서는 좀 달라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를 주기별로 진행하고 있는데, 2005년에는 지역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비율이 58.9%였는데, 2020년 조사 때는 79.9%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본인 출신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낀다는 비율이 2005년 때는 26.3%로 매우 낮았었거든요. 그런데 이 수치가 계속 증가하다가 2020년에는 자기 방언에 대한 긍정적 생각이 86.1%로 2005년에 비해 약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최근 20년 사이에 지역 방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방언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것은 사회적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해 보면, 지역 방언에 대한 인식이 산업화 이후에 부정적 시선이 커졌다가 최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획일화와 단일화를 강조하며 틀에 맞추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우리가 방언을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른 방언에 대한 인식의 변천사를 쭉~ 훑어봤는데요. 표준어도, 방언도 소중한 우리 언어이죠. 방언의 진가를 인정하고, 잘 보존해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온다라인문학센터와 함께 우리 지역의 인문학을 쉽고, 다양하게 즐기는 인문 클래스 시즌3! 오늘은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하영우 교수님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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