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8(화) 임주아 작가의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된 2020년대에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는” 나희덕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가능주의자>를 소개합니다.

이 시집은 우리 몸 안에서 끊임없이 넘나드는 “피, 땀, 눈물”에 대해 탐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만큼 서로에게 깊이 연결되어 영향력을 주고받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합니다. 특히 이 시집은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상처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습니다. 2009년 서울 용산구 철거현장 화재사건부터 오랜 시간 감옥살이를 한 장기수의 이야기, 스위스 알프스산맥에서 일어난 기후 위기 시위, 체르노빌 원전 사건, 잊어선 안 될 세월호의 흔적들까지. 시인은 그동안 보고 느끼고 경험한 사회적 사건들과 함께 살아오고, 아파해왔다는 생각이 드는 시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팬데믹 상황에 대한 나희덕 시인만의 고찰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구절들이 인상깊었는지?

‘어떤 부활절’이라는 시에서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마침내 가장 두려운 신이 되었다”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고요. ‘빙하 장례식’이라는 시에서는 “세계는 이미 많은 지붕을 잃었다”라는 구절이 와 닿았습니다. 표제작인 ‘가능주의자’에서는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라고 하면서도,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의 빛에 눈 멀어야 가능한 일이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 시집의 끝의 해설 부분에서 “불가능한 시작의 미래를 한번 더 끌어당겨보자”라고 말하는 최진석 문학평론가의 말도 좋았습니다.

 

거창하지만 이 팬데믹 시대의 시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이 시집 맨 첫 장에 있는 ‘시인의 말’로 풀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끈질기게 이어져오고 있는 현재 코로나 시대, 시인은 이뿐만 아니더라도 우리네 삶은 어떤 핏기와 허기와 한기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인간을 드나드는 ‘피, 땀, 눈물’ 이 세가지 체액은 변함이 없고요. 그래서 이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당연하게 흘러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이 도처에 숨쉬고 있습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자리에서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나희덕 시인의 말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쁘네요.

 

작가를 소개해주신다면?

1989년 데뷔한 나희덕 시인은 어느덧 30년이라는 시력을 넘었습니다. 시집으로는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야생사과』 『파일명 서정시』등 9권이 있고요, 시론집과 산문집도 다수 출간했는데, 그중 모닝쇼 청취자님들께 소개드렸던 『예술의 주름들』이라는 책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