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가을 시를 읽다가, 지난 토요일 계화도 망둥어 낚시를 가서 겪은 추억을 떠올려보게 되었어요.
옛 동료들 모임에서 낚시를 가려고 계획했다가, 환절기라 그런지 주변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조문을 가느라 주말의 모임이 취소되었어요. 잠간이었지만, 흐뭇한 모임에 대한 설레임과 결실의 계절 가을에 낚게 될 월척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기에, 특별한 일이 없었던 저로선 너무 멍한 기분이 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역시 남편은 항상 텔레파시가 통하나봅니다. 미리 모임에 대한 제 기대감을 알고 있던 터라, 밤에 동참하기로 한 남편이 축구 모임을 포기하고 저와 함께 낮 길을 떠나기로 했답니다.
너무도 푸른 가을하늘에 신기한 모양들의 흰구름, 하늘거리는 곳곳의 코스모스와 가을 억새의 인사를 받으며, 커플티를 입고 떠나는 결혼 19년차 부부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김제를 막 지나가려는데, 삼보일배의 콧등시큰한 행진을 스치게 되었어요. 조용하던 부안군민들이 저리도 일치단결해서 핵반대 운동을 처절하게 펼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제가 부끄러워, 잠간 들떴던 마음이 진지한 마음으로 바뀌었답니다. 허리와 뼈가 약한 저로서 삼보일배 행진의 고통을 떠올려보는 것은 참기 힘들었어요.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각자에게 다가오는 괴로움(업)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부안군민에게도 꼭 적용되리라 믿으며 가을 시골 정취에 다시 심신을 풀어 놓을 수 있었답니다. 예전 갯벌 탐사를 다녀갔던 낯익은 곳이고, 마침 남편의 선배님이 가족 생일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있었기에 생각지 못한 세찬 바다바람을 막을 수 있는 겉옷도 빌어입을 수 있어서 계화도의 정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지요. 게다가 잡아주신 낚시 point 지점이 정박한 배 위였는데, 미리 자리를 잡은 부부와 우연히 통성명 하다가 과는 다르지만 대학 선배임을 알게 되어 좁은 세상임을 실감하기도 했답니다. 대학 후배라는 동질성 때문에 잡아 손질해놓은 망둥어까지 아낌없이 내주신 그분이 고맙기도 했지만, 하늘채아파트를 분양받아 5200만원 프리미엄 받고 바로 팔아 이익을 보셨다는 곁들인 말로 인해, 요즘 조용하던 전주를 허세로 부풀리는 듯한 더샵아파트 분양 소문에 답답하던 가슴이 더욱 가라앉기도 했답니다. 정말 열심히 저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힘이 되는 정겹고 흐뭇한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는데, 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에 선비의 양심을 지켜가고 있는 전주시민들마저 휘둘리고 있는지요....
아파트 반상회에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젊은 새댁의 이야기가 더욱 가슴아프게 들립니다.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 하늘채도 분양받고, 이번 더샵도 신청해 분양받으면 노력없이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며 그렇게 했노라고 ... 제가 평생 떠나고 싶지 않은 저의 고향이 상식이 통하는 양심적인 고장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 저는 그런 고가의 아파트는 모델하우스도 보고 싶지 않답니다.
무노동으로 쉽게 돈을 벌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체질적으로 돋는 거부감으로 인해, 대학 동문으로서의 정겨움마저 쉽게 사라져 버려 빨리 낚시를 마쳐야 했지요. 돌아오는 길, 며칠 전 갯벌탐사를 다녀왔던 심포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 생합이라 망설여졌지만, 딸들과 함께 먹는 값비싼 정겨운 시간을 그려볼 줄 아는 남편의 현명함을 따르기로 했답니다.
정성으로 키운 호박을 썰어넣고, 향긋한 버섯, 깻잎, 각종양념에.....
배를 따도 살아 펄떡이며 끓는 물 속에 들어가면서도 마지막 반항을 하던 망둥어의 구수한 매운탕과 매실주는 멋진 저녁을 충분하게 해주었답니다.
하마터면 무산된 토요일 계획으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제 심정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더 멋진 시간으로 이끌어준 남편에게 너무 감사하며 가을의 시를 보내고 싶습니다.
평일 오후는 물론 일요일에도 10월 8일 효문여중 축제에 선보일 "Able" 학생그룹사운드 지도를 위해 연습실에 나간 남편에게 "fighting"을 외치며 멋진 첫 공연이 되길 기도합니다.
가을 편지
이 가을에
그대에게 만약 사랑이 있다면
어딘가 별 하나에 고이 매달아 두세요.
그 별로 인해서 하늘 한번 더 쳐다보고 살았으면 합니다.
행여 까마득히 잊었다가도 고개 한번 젖힐 때마다
별빛처럼 사랑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가을에
그대 만약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달 속에 그림을 그려 보세요.
시나브로 자라는 초승달을 따라 그리움 키워 가세요.
보름 지나면 조금씩 지워 보기도 하고
흐린 날이면 숨은 그림도 찾아보기 바랍니다.
이 가을에
그대에게 사랑이 온다면
알곡되어 쏟아지는 가을햇살에 해맑게 걸어 두세요.
한조각 가을볕으로도 들판의 곡식이 영글어 가듯
그대 가슴 곰비임비 채워 가세요.
한줄기 햇빛으로도 어둠이 가시듯
칠흑같은 세상 밝히는 등불로 삼기 바랍니다.
이 가을에
누군가 그대에게 사랑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주먹만한 염통 안에 담아 두세요.
그 사랑이 심장대동맥을 지나 모세혈관으로 흘러
온몸 덥히는 뜨거운 핏물이란 것을 알기 바랍니다.
이 가을에
그대가 주신 사랑의 보답으로는 정녕
나의의 폐부를 도려내어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나로 인해 생명을 호흡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동화같은 이 가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