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4일 (음 9월 9일) 많은 하객들을 모시고 양가 부모님,식구들과
화려하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저희 부부는 하나가 되어 한 가정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한 저희 부부는 연애기간이 짧은
관계로 1년 동안의 신혼에 빠져 생활하다가, 큰 아들인 이유로 2세를 갖고
자 노력을 하니 맘과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더군요.
온갖 병원과 한의원 등을 다녀보고 약도 먹어보고 온갖 정성으로 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
그러던중 건강하시던 시어머니께서 혈압으로 쓰러지게 되셨어요.
대학병원에서 뇌 수술을 받으시고 저희 신혼집에서 약 1달 정도 계시다가
아버님이 계시던 시골집으로 가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 시댁에서 두부모님들께서 조그만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것을 잊지 못하시고 시골에 가신거에요.
그후 저희 부부는 시골과 이신혼집을 오고가며 이중생활을 하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날 시골에서 전화가 걸려 왔어요.
시골집을 정리하고 전주로 이사를 오겠다고.....
어머니는 하늘이 도우셔서 회복이 빠르셨고, 거동도 지장이 없으셨지만,
아버님께서 혼자 식당을 하시기에 조금 힘드셨던 모양이에요.
그때, 우리 남편과 저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아직 아이도 없던 터라.....
남편은 저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어요.
아직은 신혼인데 시골로 이사 하자는 말이 쉽게 하기는 어려웠겠죠?
그런 남편은 보고 있으니 참 안되 보이는 것 같아 저 나름대로의
생각과 결심끝에 시골에 이사가서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내가 배워
해 보겠노라고 말하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시골에 전화하고
교차로에 전세광고를 내고 모든 일이 1주일도 체 되기도 전에 저는
시골집 아낙네가 되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시기하게도 없던 아이가 그 다음 달에 생기가 되어, 저희는
어떻게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였죠.
아마도 저희 맘을 하나님도 아셨나봐요....
맘을 예쁘게 먹고 산다고 말이에요.
전 그때부터 식당집 며느리에서 주인 아주머니로 바뀌었어요.
시어머니에게 솜씨를 잘 물려 받았는지 어머니가 해 준 것 보다
더 맛있고 정갈 하다면서 손님들은 저를 칭찬과 많은 격려를 해 주셨어요.
저는 그 것에 힘을 얻고 열심히 노력하며 산 결과 아들 둘을 얻고
전주 이곳에 아파트 분양까지 받아서 전세까지 놓게 되었죠.
정말 시골 생활7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 되 돌아 보면 제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지곤 해요.
역시 7년동안 출퇴근 하느라 우리 남편도 고생을 많이 했죠.
비가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키우느라 힘도 많이 들었어요.
하나는 등에 없고 하나는 사탕하나 물려 주며 할아버지 손에 쥐어 주었죠.
그 때 하루의 생활은 저에게 있어서 평생 잊지 못할 시간 이었습니다.
이사온 것도 후회 하였고, 배 불러 힘들 때도, 젖이 먹고 싶어 하던
아들을 젖을 제때 먹이지 못하고 불린 젖을 짜 내던 일....
그런데 그 생활 7년이란 생활을 청산하고 아이들을 위해 이곳 전주로
이사 오게 되었답니다.
물론 시부모님과 함께죠.
큰아들이 이젠 어옇한 초등학생이 되어 저를 감동 시키고,
둘째녀석 또한 올해 유치원을 마감하고 내년엔 형아와 함께 초등학생이
되는 거죠.
아무탈 없이 잘 자라준 두 아들 정말 고맙고, 사랑하고,
그래도 건강 유지해 주신 어머니, 아버님 또한 더 건강하시고,
무뚝뚝하지만 변함없는 우리 남편 ,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생활하는 이 영 태 이름한번 크게 불러 주고 싶어요.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결혼 기념일은 알고 있을까?
올해는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딱 맞아 떨어지던데....
여보! 너무나 테니스 운동에만 전념하지 말고 아이들과 나에게도
시간을 보내 주었으면 좋겟어.
우리 6식구 건강하고 항상 웃음이 끝치지 않은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며 살자.
사랑하는 이 정 오 , 이 정 훈 우리 아들 빛과 소금 같은 아이들로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착한 아이들로 자라거라.
송천동 동아 아파트 103동 901호 조 명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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