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동씨 안녕하세요?
벌써 더운 여름은 다지나가고 서늘한 가을같이 쌀쌀한 저녁시간에 용기내서 살며 사랑하며에 문을 두드립니다.
어느덧 제가 시집온지도 햇수로 다섯손가락이 다 펴지내요.
부모님 모시고 산지도 오년.형님네와 산지도 오년 또 우리큰아이 난지도 오년 참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하루였던것 같아요.
뭐든지 맘먹은 대로 되는게 있다면 세상 살만할텐데....
지금의 내모습을 생각하면 답답한 모습이라 생각들 하겠지만 전 열심히 살려 애를 많이 쓰고 있답니다.
모든것이 나의 잘못같고 모든것이 나만의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어린 투정도 제게는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이 드네요.
저의 결혼생활의 시작은 남들과 조금은 달랐어요.
시부모님의 결혼자금과 그 댓가에 대한 저의 압박감이라고나 할까. 모든 것이 제게는 불안하고 철모르는 아이처럼 상황에 이끌려 가기 바빴답니다.
모든 여성들이 꿈을 꾸듯이 저도 한 여자로서 인생의 제일 중요한 시점을 멋지게 아니 보통사람처럼이라도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친정집상황은 평범한 꿈을 꾸기엔 제가 너무 철이없었다고밖에 설명이 안되네요. 전 1남 3녀중 장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부모몫까지 해야하는 그 장녀라는 훈장을 달고 24년을 살다가 그 짐이 싫어서 도망치다시피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도 불만이 많고 투정이 많았던지 ... 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예요. 제가 아이를 나아 키워보니 알것같아요.어릴때부터 계속된 아버지의 술주정과 할머니의 욕설과 손지검은 지금도 기억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정도로 싫어요. 전 그래서그런지 몰라도 지금도 가위에 눌린답니다.
하지만 나의 어머닌 참을성과 자상함으로 저희를 키우셨다니다.
고마운 나의 어머니. 여태껏 고맙단 말한마디 못했어요.
그렇게 세월은 흘러 내가 태어난지 스물두해가 지날때쯤 아버지는 하시던 장사를 어머니께 맏기시고 농사를 지시게 되었죠.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가 않더군요. 밭에서 살다시피하시는 아버지가 신께서는 져버리시더군요.
아버지의 계속되는 농사실패로 저의 결혼식 자금도 시댁에서 주시고 그 축의금마저 다시 농사일에 쓰시게 되었답니다.
그때는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다시 일어나리라. 왜? 나의 아버지니까. 하지만 시간이 일년이 지나고 저희앞에 더큰 시련이 닥쳤답니다. 말로만 듣던 부도 . 남의 일처럼 느꼈썼는데 나의 가족에게 이런일들이 일어날줄이야.
집에 남은 동생들을 생각하면 속상해서 밤새도록 운적도 있었어요. 책임감없이 도망친 제가 미웠답니다.
나의 사랑스런 동생들. 그 동생들이 이젠 커서 사회에서 자기역할을 자랑스럽게 하고있답니다.
내년엔 둘째가 결혼을 하구요 세째 남동생은 군대제대를 4월에 했는데 하루도 쉬어 보지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있고 또 나의 막내 나랑 똑같이 생겨서 그런가 더욱안스럽고 사랑스러운 막내는 지금 학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앞만보고 가려구요. 아직 결혼할때 시부모님이 주신돈 갚진 못하지만 시부모님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며 장롱하나 숟가락하나못해온 저를 너무도 이뻐하십니다. 그게 다 저의 복이겠죠?
전 너무행복하답니다. 모든게 지나가면 추억이고 잊혀지는 것이잖아요. 가슴에 상처는 남겼지만 그나마도 저의 남편과 나의 개구쟁이 두아들의 웃음이 최고의 명약이 되어 많이 나았답니다.
전 이젠 행복한 날만 남았을꺼예요.
누가뭐래도 난 그리믿고 살렵니다. 하하하하
사랑합니다. 나의 가족 나의 삶이여.
세상의 모든이들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잖아요.
우리가 누릴수 있는 모든 행복이 바닥날때까지 웃으며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