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의혹 “화성연쇄살인사건 미스터리 다 풀린다” - 소식,

‘풀리지 않는 의혹’ 조광식 형사 X파일

“화성연쇄살인사건 미스터리 다 풀린다”

▣ 글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2008-10-15 09:47:18

지난 1988년 1월 4일 수원시 화서동 193번지 논바닥에서 여성 사체 한 구가 발견됐다. 누군가 피해자를 죽이고 짚더미 밑 칸 속에 숨겨 놓은 것이다. 당시 현장에 나갔던 한 형사는 수첩을 꺼내 검시관들이 알려주는 내용을 빠르게 받아 적었다.

[피해자는 양손과 목이 스타킹으로 결박당한 채 입속에는 피해자가 입고 있던 팬티로 재갈이 물려있음. 강간당한 흔적이 있어 보이며 피살체는 하의가 벗겨지고 얼굴이 상당히 부어 있음. 추리닝과 운동화를 신고 있으며 피해자의 온몸은 굳어 있는 상태.]

확인결과 피해여성은 수원 여고생 3년 졸업반인 18세 김이순(가명)양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한창이던 때 수원지역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이다. 수사 일선에서는 이 사건을 화성사건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또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들은 이 사건을 두고 ‘대한민국을 뒤흔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잡았다 놓아준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을 포함,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결국 공소시효를 넘기고 영구미제로 남겨졌다. 이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수없이 많다. 뿐만 아니라 작년까지 수원·화성 지역에선 끊임없이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 중에는 연쇄살인사건으로 보이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직까지도 제2 제3의 화성연쇄살인사건 공포는 유령처럼 수원·화성 일대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당시 화서동 사건을 담당했던 조광식씨는 화성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언제고 사건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그는 화성 사건의 수사파일을 모아 책으로 펴낼 계획을 세웠다. 조씨가 정리한 수사기록 원고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들춰 봤다.


원고 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77년 경찰에 입문하여 모험심과 활동력이 강한 탓에 정의감이 풍기는 훌륭한 경찰관이 되고 싶었고, 81년부터 외근 형사생활을 시작해 나름대로 밤을 세워가며 열심히 일해 왔다. 그 결과 특별 승진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의 손짓은 나를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했다.

ilyoseoul081015.jpg

조광식씨가 사건 수사 당시 기록한 수사 내용과 이를 소설 형태로 정리한 육필 원고.

살인 용의자를 쫓던 나는 용의자가 사망함으로써 여론적 인권침해 질타에 휘말려 책임을 물어 파면·구속되었다. 여론적 재판에 의하여 2년 6개월간의 옥살이를 한 나는 비통한 마음과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자랑스럽게 느껴왔던 경찰 생활을 통해 나의 경험과 교도소 실화를 기록하여 수원·화성연쇄살인사건(공소시효만료)의 진실을 밝히고, 수법이 더욱 고도화된 범행으로부터 또 다음 불행의 실종 희생자를 막으며 미래의 경찰상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책(실화중심)을 쓰게 됐다.

또 그 동기엔 나의 인생을 점검해 보겠다는 큰 의미도 담겨있다. 이 책의 독자들은 그들이 자연인이며 모두 가명이라고 알면 된다. 물론 엄격한 자료들을 토대로 했고, 사실적이며 진실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다.>

원고는 수사기록을 소설형식으로 정리한 형태였다. 당시 그가 수사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은 마치 소설처럼 비교적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연쇄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는?

화서동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씨는 동네 불량배였던 17세 한모군을 통해 유력한 용의자를 추려냈다. 그가 지목한 유력 용의자는 한모군의 친구인 M군과 J군이었다.

그가 기록한 노트에는 두 사람의 머리회전이 매우 빠른 것으로 나와 있다.

조씨는 한군을 통해 M군과 J군이 사건당일로 추정되는 87년 12월 24일 밤 9시경 사건현장에서 불을 피우고 놀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먼저 연행된 사람은 M군이었다. J군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J군은 사건직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조씨는 수사 중 M군의 친구인 차모군을 찾아냈다. 차군은 경찰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한다.

“M군이 하는 말이 사람을 죽였는데 수원을 떠나 멀리 도망가야겠다. 누구한테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 믿는다! 죽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죽거든 내가(M군) 입고 있던 (빨간)점버를 가져가 입으라고 하더군요.”

다시 조씨는 차군에게 “M군한테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언제인데?”라고 물었다.

차군은 “12월 28일 밤 10시경 화서동 동네 오락실 앞인가 봅니다. 언제 누구를 죽였다고 이야기는 안하고, 저도 관심을 가지고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M군 혼자 뭐라 뭐라고 중얼 거리길래 저는 그냥 농담으로 이야기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무심코 그냥 듣기만 했어요. 기억나는 것만 전하여 드리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또 조씨는 M군이 나이는 어리지만 범죄지능이 상당히 발달했다고 말한다.

조씨가 M군에게 “왜 네가 사건당일 입었던 빨간 자켓을 차군에게 가지라고 했나”라고 묻자 M군은 “내 자켓을 차군이 입거나 가지고 있으면 범인으로 몰려 수사 대상이 될 것이고 그러면 내가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답한 것이 그 예다.

조씨는 J군에 대해 “J씨가 살인을 저지른 것을 안 부모가 그를 의도적으로 도피시킨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조씨는 글에서 “사건발생 직후 J군은 왜 집에 있지 않고 용인에 갔었을까? 외숙모 댁에는 12월 29일 이후에 간 것이다. J군은 12월 24일 이후부터는 집에서 잠도 안자고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J군은 왜 외숙모 댁에 갔을까?’ 예감적으로 누군가 집에서 용인으로 보냈던 것이다. 피해자 김양이 사망한 것은 87년 12월 24일이다. 그리고 사체가 발견된 것은 그 다음해인 88년 1월 4일이다”라고 적고 있다.


M군 사망사건의 진실

조씨에 따르면 M군과 J군은 경찰에 순순히 범죄사실을 자백했다. 이 자백내용을 그대로 입증만 하면 화성사건은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조씨는 “1월 8일경이었다. 조사 중에 생각보다는 범행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보였다. 자술서 검토결과 범행의 동기수단·방법 등에 대하여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두사람에게 사건현장의 약도를 그려보라고 했다. 그들이 그린 약도는 김양이 피살된 지점과 일치가 됐다. 범행의 방법은 명군과 같이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두 사람의 자백내용은 거의 맞아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혐의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조씨는 “사망한 김양의 사체 부검결과 경부 압박사라는 결과가 나왔다. 경부 압박은 누군가 목을 눌러 살해한 것이며 그밖에 피해자 김양의 머리 쪽 전두부 면에 누군가 단단한 물체에 의하여 여러 번 때려 폭행한 것이라는 의사의 감정결과가 말해주고 있으며, J군과 M군의 자백에는 타살 혐의가 분명했다”고 강조했다.

M군이 몽둥이로 앞머리 부위를 수회 강타하고 목을 졸랐다고 진술한 것이 이 사건과 확실히 일치했다.

혐의를 뒷받침 해주는 물증은 계속 나왔다. 사건 현장 부근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변 일부와 모발 및 음모 몇 점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혈액형은 B형 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12개의 AB형은 피살자의 것이고 2개의 혈흔은 B형으로 판명되었다. M군이 B형이었다.

이러한 종합 자료에 의하면 두 용의자들을 기소하는데 별 무리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바로 M군 사망사건이다.

M군은 경찰의 가혹한 수사로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J군은 풀려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조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때 J군을 잡아 가뒀더라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은 해결됐을 것이고 추가 피해자도 없었을 것이다.

조씨는 M군 사망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던 것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유치장에 구속 수감 중인 M군에 대해 재차 조사를 벌여 증거인 김양의 시계를 묻었다는 수원시청 앞 부지 건너편 88공원 쪽으로 향했다. 정상에 다 올라와서는 시계를 묻은 곳을 찾던 중 M군이 뒤로 양손에 수갑이 채인 상태에서 산 밑으로 달아났다. 조금 멀리 있던 나는 이모 형사한테 빨리 잡으라고 했고, 있는 힘을 다하여 도주 하였던 명군은 이형사가 급한 나머지 앞을 가로 막으면서 M군을 잡다 두 손으로 밀쳤는데 M군은 뒤로 자빠졌다. M군은 이날 밤부터 유치장에서 앓았다. 신음소리도 내고 구토를 하며 눈의 촛점이 흐릿했다. 의식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1월 12일 아침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설마하고 방치해 두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음날 M군은 의식불명에 빠졌고 한양대 병원에서 정밀 진단한 결과 뇌부종과 뇌혈순환 장해 현상이란 게 밝혀졌다. 또 소변 불능으로 인한 급성 신부전증이 심장을 위협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렇게 M군은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조씨는 “이날은 공교롭게도 박종철군이 사망한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다. 인권침해 고문 경찰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밖에 이 원고엔 조씨가 그동안 세상에 밝히지 않았던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원고엔 J씨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간 뒤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J씨가 그 사건들에 유력한 용의자인 이유들이 자세히 적혀 있다.

조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J군과 M군이 저지른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진술에서 남긴 말 중 화성사건과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고 88년 이후 발생한 사건의 경우 J씨가 경찰에 진술한 선호 수법과 장소 등이 거의 일치한다. 이 모든 것을 원고에 모두 정리해 놓았다. 나는 아직도 그 악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empas 검색 ▶ 일요서울신문,
wh65.jpg

▲ 88년 9월 7일 ▶ 7차 화성사건 목격자 몽타쥬 사진,
J씨 ☞ 키는 16?cm, 얼굴은 갸름함, 그리고 호리호리한 체격,
          88년 3월에 군입대, 9월초 일병 정기 휴가!
          목소리는 남자처럼 굵지 않고 가는 목소리!!
          역시나 얼굴은 전혀 무표정~
 
전주 원룸의 문은 비밀번호 자동장금장치문!!

원룸 비밀번호를 모르면 문을 부수지 않고 천하의 어느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 비밀번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 사건초기
원룸자동장금장치문
이야기만 나왔어도....!!

tvnlyh07.gif

s-ne17.jpg

s-ne18.jpg

s-ne21.jpg
▲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 답은 바로 나왔는데...

실종신고 당일 전주 소방관이 문을 부수고 열었지만,

두마리 강아지들이 방안을 온통~
// 외출이라면 누가 강아지를 풀어놓을까?

그냥 단순 외출??쯤으로 보았지만,

그 날 저녁 가족은 컴퓨터에 남아있는 검색 기록을 찾았다!

도착 3분여 동안의 검색
"성추행ㆍ112" 그리고 1시간동안 사용흔적이 전혀없음!

사건이 단순 사건은 아니다는 것!!

K군의 알리바이는 시간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고있음!
// 추적 60분~

그런데, 사건스토리 대로는 실종 사건이 발생할 수가 없는데...
그 냥 흔적없이 사라진 실종 전주여대생 사건으로 전개!!

공개수사...

원룸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마지막 단서 담배꽁초마져 사라져버렸고,
K군의 완전범죄로...!!

답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