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의혹’ 조광식 형사 X파일 2008-10-15 09:47:18
<1977년 경찰에 입문하여 모험심과 활동력이 강한 탓에 정의감이 풍기는 훌륭한 경찰관이 되고 싶었고, 81년부터 외근 형사생활을 시작해 나름대로 밤을 세워가며 열심히 일해 왔다. 그 결과 특별 승진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의 손짓은 나를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했다.
살인 용의자를 쫓던 나는 용의자가 사망함으로써 여론적 인권침해 질타에 휘말려 책임을 물어 파면·구속되었다. 여론적 재판에 의하여 2년 6개월간의 옥살이를 한 나는 비통한 마음과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자랑스럽게 느껴왔던 경찰 생활을 통해 나의 경험과 교도소 실화를 기록하여 수원·화성연쇄살인사건(공소시효만료)의 진실을 밝히고, 수법이 더욱 고도화된 범행으로부터 또 다음 불행의 실종 희생자를 막으며 미래의 경찰상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책(실화중심)을 쓰게 됐다. 또 그 동기엔 나의 인생을 점검해 보겠다는 큰 의미도 담겨있다. 이 책의 독자들은 그들이 자연인이며 모두 가명이라고 알면 된다. 물론 엄격한 자료들을 토대로 했고, 사실적이며 진실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다.> 원고는 수사기록을 소설형식으로 정리한 형태였다. 당시 그가 수사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은 마치 소설처럼 비교적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조씨는 한군을 통해 M군과 J군이 사건당일로 추정되는 87년 12월 24일 밤 9시경 사건현장에서 불을 피우고 놀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먼저 연행된 사람은 M군이었다. J군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J군은 사건직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조씨는 수사 중 M군의 친구인 차모군을 찾아냈다. 차군은 경찰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한다. “M군이 하는 말이 사람을 죽였는데 수원을 떠나 멀리 도망가야겠다. 누구한테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 믿는다! 죽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죽거든 내가(M군) 입고 있던 (빨간)점버를 가져가 입으라고 하더군요.” 다시 조씨는 차군에게 “M군한테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언제인데?”라고 물었다. 또 조씨는 M군이 나이는 어리지만 범죄지능이 상당히 발달했다고 말한다. 조씨는 J군에 대해 “J씨가 살인을 저지른 것을 안 부모가 그를 의도적으로 도피시킨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조씨는 글에서 “사건발생 직후 J군은 왜 집에 있지 않고 용인에 갔었을까? 외숙모 댁에는 12월 29일 이후에 간 것이다. J군은 12월 24일 이후부터는 집에서 잠도 안자고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J군은 왜 외숙모 댁에 갔을까?’ 예감적으로 누군가 집에서 용인으로 보냈던 것이다. 피해자 김양이 사망한 것은 87년 12월 24일이다. 그리고 사체가 발견된 것은 그 다음해인 88년 1월 4일이다”라고 적고 있다. 조씨에 따르면 M군과 J군은 경찰에 순순히 범죄사실을 자백했다. 이 자백내용을 그대로 입증만 하면 화성사건은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조씨는 “1월 8일경이었다. 조사 중에 생각보다는 범행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보였다. 자술서 검토결과 범행의 동기수단·방법 등에 대하여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두사람에게 사건현장의 약도를 그려보라고 했다. 그들이 그린 약도는 김양이 피살된 지점과 일치가 됐다. 범행의 방법은 명군과 같이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두 사람의 자백내용은 거의 맞아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혐의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조씨는 “사망한 김양의 사체 부검결과 경부 압박사라는 결과가 나왔다. 경부 압박은 누군가 목을 눌러 살해한 것이며 그밖에 피해자 김양의 머리 쪽 전두부 면에 누군가 단단한 물체에 의하여 여러 번 때려 폭행한 것이라는 의사의 감정결과가 말해주고 있으며, J군과 M군의 자백에는 타살 혐의가 분명했다”고 강조했다. M군이 몽둥이로 앞머리 부위를 수회 강타하고 목을 졸랐다고 진술한 것이 이 사건과 확실히 일치했다. 혐의를 뒷받침 해주는 물증은 계속 나왔다. 사건 현장 부근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변 일부와 모발 및 음모 몇 점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혈액형은 B형 이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12개의 AB형은 피살자의 것이고 2개의 혈흔은 B형으로 판명되었다. M군이 B형이었다. 이러한 종합 자료에 의하면 두 용의자들을 기소하는데 별 무리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바로 M군 사망사건이다. M군은 경찰의 가혹한 수사로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J군은 풀려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조씨는 이렇게 말한다. 조씨는 “이날은 공교롭게도 박종철군이 사망한지 꼭 1년이 되던 날이었다. 인권침해 고문 경찰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J군과 M군이 저지른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진술에서 남긴 말 중 화성사건과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고 88년 이후 발생한 사건의 경우 J씨가 경찰에 진술한 선호 수법과 장소 등이 거의 일치한다. 이 모든 것을 원고에 모두 정리해 놓았다. 나는 아직도 그 악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