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시집은?
오늘 소개해드릴 시집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입니다.
이 시집은 김이듬 시인이 올해 봄 경북 지역 대형 산불을 겪은 이후에 쓴 시들을 묶은 책입니다.
시인은 2년 전 경북 영덕으로 내려가 바다가 보이는 외딴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번 산불로 그 집이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처음 마련한 집이었고 글도 잘 써지던 공간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은 바로 그 이후, 대피소와 차 안을 오가며 써 내려간 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삶이 무너진 뒤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주는 시집입니다.
시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인이 시의 쓸모를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집이 불타버리고 먹을 것과 잘 곳조차 불안한 상황에서 시 한 줄을 쓰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정작 집이 불타니 언어의 집이 사치 같았다”라는 문장은 그런 마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시를 씁니다. 시가 위로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시를 쓰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의 시들은 “힘내라”거나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미워할 힘조차 없이 시간이 지나간 순간들,
아무 감정도 붙잡지 못한 채 계절을 통과해온 시간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그래서 이 시집은 재난을 이겨낸 이야기가 아니라, 재난 속에서도 그냥 살아낸 시간의 기록으로 읽힙니다.
시인 소개?
김이듬 시인은 2001년 문예지 《포에지》를 통해 등단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시인입니다. 『명랑하라 팜 파탈』,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등 여러 시집을 발표했으며,
솔직하고 강한 언어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국내외 여러 문학상을 받았지만, 시인은 어떤 수식어보다도 그저 “시인 김이듬”으로 불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화려한 표현이나 강한 주장 대신,
재난 앞에서 말을 아끼고 타인의 슬픔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태도가 돋보입니다.
그 절제된 태도 덕분에 이 시집은 더 조용하고,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