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0(화) 임주아작가의 책방에 가다

오늘 소개할 시집은?

강제로 뿌리 뽑힌 채 평생을 떠돌아야 했던 여든여섯 노시인의 노래, 오늘은 의사이자 시인으로 평생 치유의 시학을 펼친 마종기(86)의 새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 총 43편의 시와 1편의 산문이 수록됐다. 

시인은 장구한 세월 동안 60여 개국을 떠돌며 모국어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마종기 시 세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번 시집은 표제작부터 아름답다. 

 

“내가 시인이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초록이었을 때/ 가는 곳마다 꽃향기가 넘치고/ 

바람은 빈 들판을 요란하게 달리면서/ 평생의 꿈까지 흔들며 춤을 추었지”

 

이번 시집의 특별함은? 

열세 번째인 이번 시집에 처음으로 시집 맨 뒤에 산문을 넣었다. 산문 ‘영웅이 없는 섬’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인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성명서에 이름이 올랐다는 이유로 모진 고초를 겪은 뒤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야 풀려났다. 

이듬해 도미(渡美)한 마종기는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1966년부터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게 된 배경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아들만을 기다렸던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 씨다.) 

시인은 “알게 모르게 내가 시에서 젊은 날 당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더라”며 “정확하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직접 말하는 것이 예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 산문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마종기 시인은? 

전도유망한 의학도이자 마음속에는 순수한 시심(詩心)을 품었던 젊은이는 이제 여든여섯의 나이기 되었습니다. 

시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늘 어지럽게 살게 된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방향을 모르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의 시에는 생(生)에서 느낀 멀미를 다스리는 시간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뿌리를 뽑힌 자의 슬픔, 발 없는 새의 슬픔 같은 것.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의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영상의학과 의사와 의대 교수로 근무했다. 

1959 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