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랫동안 재미있는 사연 전해주셔서 잘 들은 보답을 하고 싶어 편지 한 통 썼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가정식 반찬?
“아들 일어날 시간이야.”
알람처럼 몇 번 같은 말을 계속하고 서서 아들이 부스스 눈을 뜨길 기다립니다. 잠이 부족한 듯 다시 눈을 감는 아들을 보고 잠을 떨칠 최고의 처방을 내립니다.
“돈가스 해 놨으니까 일어나서 아침 먹어.”
아침밥을 먹게 할 욕심에 잠에 취해 있는 아들에게 메뉴부터 알려 줍니다.
대체로 아침 메뉴가 맘에 들면 벌떡 일어나 밥 한 공기를 먹고 나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게 하려는 미끼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아침 메뉴로 다른 식구들이 먹는 시원한 국을 제쳐 두고 돈가스, 햄, 구은 김, 불고기 등 이중에서 아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할 음식 한 가지를 소량으로 준비합니다. 세 살 아래인 여동생은 콩나물국에 묵은 김치를 잘게 썰어 주면 넣어서 맛있게 먹는데 당초 아들 식성은 식구들과 섞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의 한마디에 저는 귀를 의심하였답니다.
“아유, 집에서도 인스턴트예요. 가정식 반찬을 먹어야지요.”
“웬일? 시래기 국 있는데 줄까?”
“예, 큰 그릇에 떠 주세요.”
농담이려니 싶어 보통 국그릇에 적당히 떠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녀석이 다시 큰 그릇을 달라고 하더군요. 평소 더운 음식을 싫어하던 아들은 큰 그릇에 국을 비워 밥을 말아 뚝딱 먹고 나서는 겁니다.
국을 먹겠냐고 물으면 차라리 라면을 끓어 달라던 녀석인데 참! 별일이다 싶어지면서 순간 우리 아들이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느 날 신발 사이즈가 늘고, 옷 사이즈가 커지면서 부쩍 부쩍 자라는 모습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는 식성이 변하는 시기를 눈치 챈 것입니다.
잘 먹는 음식으로 봐서 녀석이 어린 줄 아셨지요? 만 2년 전에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건장한 25세 청년입니다.
우리식구 네 명의 식성은 양분화 되어 있답니다. 아빠를 닮은 아들과 엄마를 닮은 것 같은 딸.
봄이 되면 어떤 집 식단이든 한 두 번은 끓이게 되는 냉이 국, 쑥국을 우리 식구들은 저 빼고는 아무도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절에 맞는 식탁은 필요가 없답니다. 혼자 먹자고 끓이기도 귀찮아 아예 멀리하고 살았지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나이가 먹었는지 먹고 싶을 때는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혼자라도 몇 끼니를 먹습니다.
야채 반찬도 시금치 콩나물은 젓가락이 가는데, 고사리, 취나물, 미나리 같이 대중적인 반찬조차 먹지를 않아요.
결혼하니까 어머님이 아들의 식성을 자랑삼아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아들은 소탈해서 김치하고 김만 있으면 밥을 뚝딱 먹는다.”
소탈한 남편을 만났으니 반찬 걱정 없이 살아도 되는 복을 받았다는 얘기셨지요.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사계절 야채 반찬은 먹지를 않더군요. 생선도 별로 먹지 않고, 오로지 김치와 육식만 좋아하는 식탁 몇 년 차리고 나니까 소탈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편식이구나 싶었습니다.
신혼 때 봄이라고 쑥국을 끓여서 줬더니 뜨거운 국그릇을 들어서 내게 주는 것 있지요. 수저를 안대면 안 좋아하는구나! 감을 잡을 텐데, 국그릇을 내게 넘겨주니 정말 황당하더군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우리 식단에 쑥국은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몸에 좋다는 청국장도 몹시 싫어합니다. 이것 역시 멋모르고 끓였다가 그날 저녁 겨울이었는데 온 집안 창문은 다 열고 환기를 시킨다고 소동을 피우는 바람에 다시는 끓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친정 어머니는 청국장을 만들어 주시는데 지금도 저는 한 주먹만큼만 가져와 혼자 끓여 먹고 환기 시키기에 바쁘답니다.
그런 아버지의 식성을 닮았는지 아들도 야채와 생선은 싫어하고 육식을 좋아합니다. 지금껏 그렇게만 알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가정식 반찬을 운운하니 어이없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어묵에 양파를 듬뿍 넣어 볶고, 호박에 느타리버섯을 넣어 볶고, 미역줄기, 오이까지 양념에 무쳐 아침상을 차리고 깨웠습니다. 주방으로 온 아들이 깻잎이 담긴 소쿠리를 보더니 묻더군요.
“깻잎도 양념해서 찌실거예요?”
“어. 모처럼 가정식 반찬 좀 만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리를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오나라♬♬ 오나라♬♬ ~”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 있지요.
모처럼 이것저것 반찬을 만드는 엄마 모습을 장금이에 비해 주다니.
그동안 제 요리가 단순하긴 했나봅니다.
이래 뵈도 중학생이 되면서 손수 밥을 지어 먹었으니, 반찬 만드는 경력이 40년을 바라보는 데 말이지요. 하기야 반찬도 해야 늘지 식구들 식성에 맞춰 하다 보니 이제는 밥반찬을 몇 가지 밖에 할 줄 모르는 부실한 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반찬을 하다말고 한바탕 ‘하하하’ 웃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아들 장가들기 전에 엄마 표 반찬 많이 만들어 먹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