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 의 견 서
사 건 : 2009 재노 82 독직폭행 담당 재판부 : 형사 6부 피 고 인 : 조 광 식 참 고 인 : 송 행 대 HㆍP : 010-0000-0000
위 사건에 관하여 위 재심청구 참고인은 아래와 같이 재심청구 참고의견서를 제출합니다.
- 이 유 -
1. 이 사건 범죄 사실 요지
이 사건 범죄사실 요지는 1987년 12월 24일 수원시 화서역 부근 수원여고생 희생자 김미순(18) 양 강간 살인 사건(화성연쇄살인사건의 동일범 소행, 1988년 1월 4일 시신 발견)으로 당시 수원경찰은 주변 탐문수사(목격자 진술)에 의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1월 6일 명*열 군(17)과 정 * 군(20)을 검거, 이들은 경찰의 추궁에 범행일체를 자백하였고 이에 대하여 수사 중 1988년 1월 8일 수원시청 앞 88공원 공터 야산에 묻었다는 희생자 시계(증거물)를 찾다가 용의자 명*열 군이 뒤로 수갑이 채인 채 갑자기 야산 밑으로 도주하여... 이에 놀란 동 피고인 이왕재 형사가 급히 붙잡는 과정에서 전혀 무방비 상태로 밀쳐 뒤로 넘어진 용의자를 이왕재 피고인이 나뭇가지를 꺾어서 명군의 엉덩이와 발바닥을 수회 때리고, 조광식 피고인은 옆에서 주먹과 발로 수회 걷어차 두부에 의한 뇌좌상 및 뇌부종으로 사망케 하였다는 범죄 사실임,
2. 범죄사실의 부당성
범죄 사실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범죄로 보기에는 너무 의문의 여지가 많은 내용의 진술이 있습니다.
가. 당시(1월 15일 박종철 사망 1주년과 맞물림) 피고인 조광식과 이왕재 형사는 여론에 밀려 경찰·검사의 강요와 협박에 의한 일방적 추정에 의하여 피고인 조광식은 징역 2년 6월의 실형과 피고인 이왕재는 징역 3년의 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나. 주변 탐문수사(목격자 진술 - 사건당일 밤 현장 부근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에 의해 1988년 1월 6일 유력한 용의자 명*열 군과 정 * 군을 검거했고, 목격자와 대질진술 결과 사실임을 알아냈고, 이들은 경찰의 추궁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습니다! ~하여 1월 8일 명군이 시계를 묻었다는 수원시청 앞 88공원 공터 야산에서 희생자 김미순(18) 양의 시계를 찾던 중... 살인 용의자인 피해자 명*열 군이 등 뒤로 수갑이 채인 채 갑자기 산 밑으로 도주하면서 구르고 다시 일어나 또 있는 힘 껏 도주하는 것을 이에 놀란 동 피고인 이왕재 형사가 급히 뒤쫓아 달려가 붙잡는 과정에 밀쳐 넘어져 전혀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언 땅에 부딪쳤던 것입니다. 이날 밤부터 유치장에서 시름시름(식사와 수면부족 등) 앓았지만, 담당 형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인식하지 못한 채 12일 오전까지 유치장에 그대로 방치했던 것입니다...
결국, 유치장 질서를 맡고 있는 의경은 12일에도 명군이 식사를 못하자 똑바로 일어서지 않으면 혼내주겠다는 등 말을 하다 못 일어나자 1백까지 숫자를 큰 소리로 외치라고 겁을 주었고, 명군은 숫자(72까지)를 세다가 그대로 졸도 상태에 빠졌던 것입니다. 수사 도중 위 피고인 조광식 형사는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와 붉은색 점퍼 차림의 명군을 업은 채 경찰서 후문을 나와 바로 옆 경기도립병원, 다시 서울경찰병원에 응급치료를 요청했지만, 환자는 이미 의식불명 상태로 상태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 긴급후송 조치(8일~12일까지 유치장에 방치) 미흡으로 치료시기를 놓쳐버림,
13일 다시 환자는 급히 서울 한양대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수원경찰서는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습니다. 8일 명군이 수갑이 뒤로 채인 채 도주하다 밀쳐 넘어져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언 땅에 부딪쳐 시름시름 앓기 전날... 6, 7일 수원경찰서(정자파출소)내에서 이왕재 형사의 일부 폭행사실은 있었고, ‘누군가 책임질 운명에 놓여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는 긴박한 사연 속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당시 김기수 수사과장은 6, 7일 동 피고인 이왕재 형사의 경찰서(정자파출소)내에서 일부 가혹(폭행)행위 사실을 숨기기 위해 ‘피고인들이 때리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명군이 도주한 것은 사실이니 8일 오전 명군이 도주하는 것을 잡아서 이왕재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명군의 엉덩이와 발바닥을 수회 때리고 조광식은 옆에서 주먹과 발로 수회 걷어찼다고 해라’하며 현 상황(명군뇌사상태)을 책임지라는 식으로 말이 나왔고, 위 피고인 조광식 형사는 조장으로써 책임(긴급후송조치 미흡․방치 등)을 느껴 그냥 이를 받아드리기로 하고 허위진술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 ~하여 사건초 등 뒤로 수갑이 채인 채 도주하다 붙잡는 과정에 밀쳐 넘어져 //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언 땅에 심하게 부딪쳐 다친 사실이 전혀 숨겨짐, // 당시 긴급 후송조치(사태의 심각성 미비)가 미흡했고 뇌사상태로 이어진 것임,
그리고 이틀 후인 1월 15일(박종철 군 사망1년) 수원지방검찰청이 독직 폭행사건을 발표하면서... “수갑이 뒤로 채인채 도주하다 밀쳐 넘어져 무방비 상태에서 머리를 언 땅에 부딪쳤다”는 사실은 뒤로한 채 지난 8일 조사과정(현장에서 손목시계를 찾던 중)에서 명군이 달아나자 경찰관 2명이 쫓아가서 명군을 발로 걷어차고 근처에 있던 나무막대기로 폭행한 것으로 발표했던 것입니다. //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 독직 폭행,
라. 허위진술 과정에서 검사는 이왕재 피고인이 나뭇가지로 명군의 머리를 수회 때리는 것을 보았냐며 진술하라고 하니 동 조광식 피고인이 “아니, 나뭇가지로 머리를 때리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보지못하였습니다!” 부인하자, 『이성을 잃고 화가나 때릴 때는 나무가 머리에 닿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게 됐던 것입니다. // 진실(수갑이 뒤로 채인 채 도주하다 밀쳐 넘어져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 언 땅에 부딪친 사실)은 숨겨 진 채 경찰 고문치사사건(구타·독직폭행)으로 // 변해버림, // 재심청구 첨부서류(책자와 당시 신문기사) 참고,
마. 6, 7일 동 피고인 이왕재 형사의 취조도중 일부 단순 폭행사실은 있었으나 기사에서 말하는 고문(심한 가혹행위) 정도는 아니었으며 이는 피해자 명군의 사인인 뇌부종과 뇌혈순환 장애 현상으로 인한 합병증[뇌사사망]과는 전혀 인과관계가 없고, 피고인 조광식 또한 위 사건 현장에서 명군을 때리고 폭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 결국, 진실(수갑이 뒤로 채인채 도주하여 붙잡는 과정에 무방비 상태로 밀쳐 넘어짐)은 숨겨진채 당시 여론은 명군 뇌사사망을 경찰독직폭행사망으로 몰아갔고, 이에 다른 용의자 한 명(정군)을 풀어주어 공포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계속되었고 7차 8차 9차 희생자는 발생하였습니다. // 당시 명군 뇌사사망으로 수원여고생 사건을 뒤로한채 유력한 용의자를 놓아줌, // 지금은 공소시효만료로 국가에서 용서(인권보호)해주고 있고,
3. 사건 당시의 유리한 증인
가. 피해자 명군 사체 부검의 서울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는 피고인들의 폭행보다는 명군이 구르고 넘어져 머리를 다치게 된 것으로 증언하게 된 것입니다.
나. 당시 현장 목격자 진우건설 직원 박병윤 전무의 증언, 명군이 등 뒤로 수갑이 채인채 도주하는 것을 이왕재 피고인이 급히 뒤쫓아가 밀쳐 무방비 상태로 굴러 넘어지면서 붙잡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증인 당시 때리지 않았다는 유리한 목격자의 진술 등이 있었습니다.
4. 피고인 조광식 전과기록
도의적 책임 구속으로 인하여 검사들이 피고인에게 전과기록 입력을 하지 않아 아무런 전과 사실이 없다는 것은 검사들이 여론에 의한 피고인의 일방적 구속을 인정케 한 의미가 바로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 결 론 -
피고인들이 일부 범죄혐의(용의자 도주, 긴급환자 후송조치 미흡․방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명노열 사망과 피고인 조광식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명군의 사인인 두부 및 골격근 등의 외상에 의한 뇌좌상 및 부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뇌사사망]은 1988년 1월 8일 수원시청 앞 88공원 공터 야산에서 희생자 김미순(18) 양의 시계[증거물]를 찾던 중... 유력한 살인 용의자인 피해자 명노열 군이 등 뒤로 수갑이 채인 채 갑자기 산 밑으로 도주하여 이에 놀란 이왕재 형사가 급히 뒤쫓아 달려가 붙잡는 과정에 급히 밀쳐 넘어져 전혀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언 땅에 부딪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 담당 형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인식(괜찮겠지)하지 못한 채 유치장에 그대로 방치, 긴급 치료시기를 놓쳤던 것입니다.
이에 피고인들의 행위는 범죄자가 아닌 정당 공무행위라 할 것이고, 당시 수원여고생 피살사건은 명군고문 뇌사사망사건으로 뒤바뀌었고, 결국 유력한 용의자를 놓아주어 불행의 7차 8차 9차 희생자를 만들었으며... 결코, 진실은 밝혀져야하고 그래서 이 사건 재심청구는 정확한 판단(수원여고생피살사건과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의 타당함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참고인은 반드시 재심청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참고이유서를 제출합니다.
2010. 5. 3.
참고인 송 행 대 (인)
서울고등법원 제 6 형사부 귀중 |
▲ 잘못된 실종 전단지 ☞ 주변이 아닌 원룸을 끝으로 실종되었다!!
06년 5월 30일~6월 2일 경기도 남양주에 집에 다녀옴,
6월 3일 새벽 과외 후 귀가도중 오토바이 폭주족에게 핸드백(휴대폰) 날치기 당함,
// 실종 사건과는 전혀 무관,
6월 5일 과 종강모임 시작!
// L양은 회식장소에서 시종 밝았다!!
6월 6일 마지막 장소에서 02시 20분경 둘은 자리를 떠남,
// 그 전 S양이 K군에게 L양 데려다 줄 때 골목길이 무서우니 같
// 이 가자고 약속!! 약속만 지켰더라도...
// 둘은 귀가도 중 컴퓨터에 '성추행·112' 를 검색할 만큼~
// 큰 성추행은 일어난다!!
// L양은 성추행을 피해 원룸으로 급히 뛰어갔을 것이며.....
그리고 02시 40분경 K군 휴대폰이 울림(S양의 전화),
// 받지 않음, - 못 들었단다??
log in : 02시 59분 08초
log out : 03시 92분 - 성추행·112 검색,
컴퓨터 꺼진 시각 : 04시 21분... (그냥 켜져만 있었음)
원룸 컴퓨터에 ‘성추행·112’ 검색흔적을 남긴 채 전주여대생은 소리없이 사라진다…
그 날 성추행을 피해 원룸에 들어왔지만, 범인은 문을 열고 들어온다!
▲ 원룸 Digital Door Lock(자동장금장치문)
그리고, 6일 7일 8일 오전까지 그녀의 소식(무단결석)은 없다!
그 때까지 너무 태연한 k군!!
6월 8일 점심시간에 원룸 방문, 112에 신고 원룸 문을 연다!
원룸에 사람은 없고 개들이 풀어져 룸 안이 매우 지저분함,
// 개는 누가 풀었을까?
소방관은 돌아가고 K군은 원룸을 청소하기 시작!
// 초기 사건을 그 냥 외출쯤으로… 다들 크게 신경 안 씀,
6월 8일 저녁 18시쯤 남양주 가족들이 전주 원룸에 도착한다!
지구대에 실종신고확인하고 저녁에 컴퓨터 사용기록을 체크하다
컴퓨터에 ‘성추행·112’ 검색 흔적을 발견한다.
// 이때까지 사건의 심각성을 못 느낌, 설마???
6월 9일 덕진서에 실종신고하고 K군에게 ‘성추행’을 말한다.
// 이때부터 회식장소 화장실 성추행??? 스토리가 짜여진다.
// “화장실 네가 나 따라왔냐?”
그리고, 창틀에 툭 비벼 꺼진 담배꽁초가 발견되지만…
며칠 뒤 룸 안에 있어야 할 상이 없어 찾아보니
집 앞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었다!
범인은 사건당일부터 신고일까지 원룸에 들락날락!!
덕진서는 범인을 눈앞에 두고 외부범인으로 답답한 수사는 시작된다!
// 결국 완전범죄 미제사건 쪽으로…
▲ 안전하고 편안한(사건은 사건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경찰!!
▲ 흔적 없이 사라진 K군 싸이… 왜??
▲ 2차 화성연쇄실종사건 용의자 - 170cm 전·후의 키에 보통체격, 30대 중·후반의 남자!
▲ 아무죄없이 19년동안 억울하게 교도소 생활하신 비극의 희생자 정종욱 님,
//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
70년대 초, 미모의 여인 정인숙 사건의 주인공 정종욱(당시 34세) 죄수였다.
정씨는 교도소 전체의 회장!
새마을 회장직을 맡고 있었지만, 20년 이상 수감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세상이 떠들썩 하였던 정치가의 큰 사건에 주인공이었다. 정치에 파문을 일으킨 것 같아
오빠 정씨가 권총으로 동생 정인숙을 죽인 것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이냐? 오빠 스스로의 범행이냐? 그렇지 않으면 아무 관계도 없는 오빠를
왜 교도소에 수감되게 하였느냐?」 하는 세간의 여론이 있었지만,
결국 이렇다 할 종결 없이 오빠에게 죄는 인정되었고, 오빠는 정치의 희생물,
죄가 없다는 등 많은 오점을 남긴 정치적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여기 교도소에서
죄수의 회장직을 달고 복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