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 고향인 남편은 개를 무척 좋아합니다.
동호회만도 10여군데 가입하여 늘 새로운 소식을 구하기도 하고, 진도개로 인한 마음의 평안을 찾는 듯 합니다. 때론 가족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기대하며 무척 서운한 적도 많지만 결국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주는 것도 사랑이라 생각하여 싫어하는 개도 사랑해보려 애를 썼지요.
왕복 11시간이나 걸려 진도 축협에서 개를 분양받아, 아파트에서 두 달 정도 새벽, 늦은 밤 사람들 눈을 피해 키우기도 했지만, 결국 뒷산 공터에 튼튼한 개집을 마련해야 했답니다. 가축병원에서 소개한 멋진 수컷에게 시집을 보냈지만 지참금 10만원까지 날리고 그 집에선 개를 잃었다며 다시 2개월된 다른 진도개를 보내왔답니다. 어이없는 일이어서, 맡겼던 농장 근처와 그동안 훈련삼아 데리고 다녔던 산과 저수지 낚시터 등 곳곳을 몇일이고 헤매며 개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기에 다시 그 새끼 진도개를 키우게 되었지요. 꽤 많은 자손을 번성시킨 결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쁜 강아지를 많이 나눠줄 수 있어 때론 기쁨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공터의 개집에서 풀려 나갔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게 또 잃어버리게 되었지요.
매일 매일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개에게 쏟는 정성을 차라리 가족에게 쏟으라며 시골로 이사가기 전까지는 개를 기르지 말자 했건만, 또 다시 블랙탄이라는 네눈박이 진도개를 구했다고 기뻐하는 모습에 정말 말문이 막혔습니다. 금새 6개월이 되어 놀라운 풍채를 자랑하는 진도개와 함께, 다시 인적없는 삼천천 상류쪽 둑길을 따라 산책도 하고, 아직 훈련이 덜 되어 천방지축인 개로 인해 불편함이 많았지만, 남편과 함께 겨울 둑길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낭만을 즐기기로 했지요.
그러나 결국 메마른 겨울 논가에서 알 수 없는 작업을 하던 세사람 때문에 저희의 산책은 막을 내려야 했답니다.
둑길아래 비탈진 곳을 날쌔게 날아내려간 개가 하필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접근하여 질겁을 하게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허리 디스크라 조심스러워 비탈길을 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아직 개를 무서워하는 저는 둑위에서 소리쳐부르며 아주머니를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냥 나무가지로 살짝 겁만 주어도 달아날 6개월짜리 개에게 너무 놀란 아주머니는 정말 인색할 정도로 개주인인 저를 나무랐지요.
하필 둑아래 천쪽으로 내려가 물을 감상하고 있던 남편은 금새 뛰어간 개에게 목줄을 매라는 내 손짓을 보고 줄을 매어 둑위로 올라왔어요.
사람 물어죽인 개 사건도 모르느냐? 개 묶지 않고 다니면 벌금이 10만원이상이라는 둥, 상식이하의 행동을 한 개주인이라며 세상 태어나 그토록 몰인정한 언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저로선 너무 황당했습니다.
묶어가지고 다니다가 사람이 평소 없는 곳이기에 이곳에 와서 풀어줬노라 사정을 말씀 드리고, 친밀감이 형성될까 싶어 하시는 일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싸늘하게 사람이 아니라 개를 대하는 듯 눈도 들지 않고 '모른다'잘라 말하시더군요. 미안함을 사과하는 의미로 건넨 대화의 시작을 그토록 잘라버리고 남편인 듯 보이는 분까지 싸늘한 눈길을 보낼 때는 정말 서운함이 극에 달했지요. 심장마비로 죽을 뻔 했다는 소리까지 듣고 보니, 저 또한 개가 너무 미워져 다시는 곁에 두지 않으리라 강한 다짐을 하게 되었답니다. 세상 살아가며 언젠가 그 분들을 만나게 되면, 그 잠간의 스친 사연이 그토록 깊은 상처를 주었노라 말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놀랐더라도, 개를 쫒고 나서 마음이 진정이 되었으면 주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에서 건네는 대화에 그토록 가시박힐 대응을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개에 대한 느낌이 정말 현저하게 다른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느낍니다. 가족처럼 너무나 아끼는 사람과 징그러운 벌레 보듯 절대 곁에 두지 않으려 하는 사람!! 요즘 들어 유치원 아기나 개 주인 등 개에 물려 끔찍한 봉변을 당한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됨이 그토록 작은 가슴을 만들었음이 분명하지만, 개를 사랑으로 키우는 많은 사람들의 넓은 가슴도 헤아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를 길러 우수한 진도개를 분양해주는 사립 고교 이사장님도 계시고, 남편 또한 개를 정성으로 길러 주변 사람들에게 분양해준 결과, 개로 인해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으로 이사까지 해서 정말 아낌없는 사랑 베풀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분의 놀람으로 인해 다시는 개주인으로서 당하는 비인격체로서의 모독을 견뎌내지 않으려 결심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시 시간이 돌려져 평화롭던 일요일 삼천천 둑길이 나타나고, 그 낯선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분명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결론은 맺지 않으리란 결심도 섭니다.
보다 현명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도시에서 그토록 시골 어린시절의 향수에 젖어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르려는 남편의 뜻을 어찌 쫓아야 할런지요? 동물에 관련된 놀라운 일면이 방송에서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주변에서 개에 대한 선입견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어떤 분명한 결론을 맺어야 할 시기가 된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사건이 결국 삶의 한 계단이 되어 남편의 심정을 헤아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더욱 행복한 가족의 2003년 크리스마스를 보상받게 되었지요.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상처였지만 더 크게 다가온 사랑으로 완전히 치유되었고, 또 한번의 마음수양 공부를 쌓을 수 있었음도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