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동씨 지금부터 제 맘속에 있는 힘든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2001년 봄 내겐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찾아 왔다
남부럽지 않게 넉넉한 삶을 살던 우리가족 좋은차 좋은집 좋은옷
이 모든것이 행복인양 하루 하루 잘 살아 오던 제게 갑자기 찾아온 어둠들
독촉장..최고장.. 소환장
종이 한장에 적힌 몆글자들...내겐 너무도 무거운 짐이 었습니다.
운영하던 가게를 잃게 되었고 우리가족의 화목함또한 이 어둠속에 감추어져 어두운 하루 하루를 보낼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내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며 삶은 회피하려는 마음 이 내게 생겨 버렸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였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떠도는 자신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이런일들이 부득 내게만 있는 일들은 아니 겠지만 내겐 ...
내용인즉
1998년 12월 대기업을 다니던 제가 8평 남짓의 이동통신 서비스 전문 업체를 시작하여 1년만에 35평 짜리 가게로 확장할정도로 제 하는일을 성공에 성공을 이루 었습니다. 인터넷사업 사진업 등 사세를 확장해 갔고요!
또한 때 마침 중국에 수출 물건이 생겨 1주일만에 3000만원의 많은 순수익을 얻게 된것이었습니다.
이에 더큰 욕심을 부린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10배의 이익을위하여 무리한 투자를 했고 믿고 있던 중개상의 도움을 다시한번 바랬던 것이 었습니다.
일주일간의 수소문 끝에 납품을 완료하고 10여명의 직원과 자축 행사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일 입니까 수금일이 되어도 통장에는 ...
중개업자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는 이미 없는 번호인 것이 었습니다.
사기라는 두글자는 제겐 상관없는 무의미한 글자로만 여기던 제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화려했던 날들은 이젠 다시 없는 환상이 되어 버린 것같았습니다.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엔 압류가
보증을 선 아버지에게도 매형에게도 ...아픔은 같았습니다.
그후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어둠을 피하기 위하여 주민등록 말소까지 이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덜 힘들겠지하고 주민임을 포기하기에 이르럿고요
멀리 도망가 살고 싶었고 너무도 참기 어려워 죽으려까지..하지만 내겐 가족이 있기에 그또한 더큰 슬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아품과 고통속에서도 제게 힘을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실패한 사업을 말하기 이전에 몸 과 마음을 걱정하는 아내와 아버지와 가족들 이들이 제 방황을 막아 주었고 어리디 어린 아이의 한마디가 "아빠 우린 돈이 없어도 웃을수 있쟎아" 더이상 흐를 눈물이 없게 하더군요
김차동씨
그후 전 회사에 어렵게 취직했습니다.
또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구요
2년이 지난 주민등록을 재등록하고 지금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전보다 더행복한 웃음을 보이는 가족이 되었구요
환하게 웃는아이의 모습속에서 지난 나의 그릇된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김차동씨 전 깨달았습니다
가족이라는 소중함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내게 있을때 모두들 피하려고만 하지만 가족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
ps: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보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자 이젠 다시 실패하지않을 거야
이미 실패해 버렸는데 다시 또 반복하겠어?
언제나 당신만을 바라보며 또 아이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께
사랑해..!~~~
제가 힘들때 자주부르던 노래가 있어요!
신청해도 될까요?
나는 문제없어.!(이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