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익산에살고있는 1985년생, 김성우 입니다
저는 평범한 삶을 꿈꾸며 살아온 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부모님께 효도하며, 가족들과 웃으며 살아가는 것.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그 평범한 일상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은 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했을 무렵, 심한 두드러기가 찾아왔습니다.
온몸을 뒤덮는 가려움과 통증은 일상을 버티기조차 힘들게 만들었고, 결국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꿈을 안고 들어갔던 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그날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둔 뒤 부모님이 하시던 카펫 시공과 배달 일을 도우며 약 4~5년을 보냈습니다.
새벽부터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현장을 오가며 땀 흘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일했습니다.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익산 노동청에서 2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습니다.
비록 화려한 일은 아니었지만 맡은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를 조금씩 배워 갔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 현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점점 어려워졌고, 저는 이제 가족에게만 기대기보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과·제빵을 공부하며 제빵사 자격증과 케이크디자이너 자격증을 취득했고, 어렵게 관련 업계에 취업도 했습니다.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들며 '이 길이라면 평생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 바람과 달랐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1년 정도 만에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미용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실기만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으로 그렇게 또 하나의 꿈을 마음속에 묻어야 했습니다.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헬스와 스피닝 강사가 되어 누군가의 건강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땀을 흘렸고, 제 자신과 싸우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 꿈 역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또 다른 길을 찾았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때쯤 저는 처음 독립을 했고 새벽부터 점심까지 택배 분류 일을 했습니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며 온몸이 지칠 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오후에는 곧장 수영장으로 향했습니다.
제 목표는 라이프가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수영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같이 연습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훈련을 이어가던 중 어깨를 크게 다쳤고, 결국 라이프가드의 꿈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삼촌들께서 제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아시는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CNC 선반으로 나무 합판을 가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낯선 기계와 씨름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혔고, 이후에는 장판 배달과 바닥재 시공 보조 일도 배웠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리가 버티지 못했습니다.
허리 부상으로 더 이상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또다시 일터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걸까.'
하지만 저는 그 질문 앞에서도 다시 일어났습니다.
몸을 추스른 뒤에는 구제의류를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중고 옷들을 하나하나 손질했습니다.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다시 새것처럼 정리해 누군가에게 기분 좋게 입혀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습니다.
온라인 중고거래 앱에 올려 판매했고, 작은 천막을 치고 노상에서 직접 옷을 팔기도 했습니다.
크지 않은 수입이었지만 제 손으로 번 돈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그 돈에는 제 땀과 시간, 그리고 다시 살아보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약속만 잡아 놓고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
직거래 장소에 도착하면 오지도않고 연락을 끊고 사라지는 사람들.
분명 중고 의류라고 설명했는데도 새 옷이 아니라며 심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
그런 일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여행을떠났었습니다
잠시라도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웃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휴대전화에서 거래 알림음이 들렸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알림이었지만, 그 순간 저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또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까.'
'또 상처 주는 말을 듣지는 않을까.'
그 작은 알림 하나가 제 마음을 무너뜨릴 만큼 저는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마음에 병이들어 있었다는 것을.
그 이후 저는 몇 달 동안 여러 정신과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소개받은 멀리 천안아산까지 SRT를 타고 오가며 진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약의 종류는 늘어났고, 수면제의 용량도 점점 강해졌습니다.
잠에서 깨어 있는 시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생각은 생각을 낳았고, 걱정은 걱정을 불렀습니다.
마치 수없이 많은 실이 엉켜 버린 실타래를 혼자 풀려고 해도 도저히 풀수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귀한 인연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익산의 한 심리상담센터에서 정말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정신과 병원도 익산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제게 맞는 심리상담치료와 약들로 조금씩 마음의 병이
상담을 통해 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제가 꿈꾸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너무 큰 간격이었습니다.
저는 늘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 간격이 커질수록 저는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행복했던 과거의 저도,
실패하며 무너졌던 저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모르는 미래의 저도,
모두 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순간부터 조금씩 제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모습도, 넘어졌던 시간도, 모두 제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마음이 달라지자 몸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복용하던 약도 정신과선생님과 상의하며 하나씩 줄여 나갔고, 결국 단약에도 성공했습니다.
매일같이 저를 걱정하던 가족들도 조금씩 안도의 미소를 되찾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감사했던 것은 가족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저를 걱정하는 마음이 때로는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결과를 재촉하기보다 "괜찮다, 천천히 해도 된다."며 제 삶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 응원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로 다시 나가는 것은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반복하며 저는 어느새 스스로를 너무 작고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 몸도 많이 망가졌습니다.
체중은 어느새 150kg을 넘어섰고, 거울 속 제 모습은 예전과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 생각 하나로 아주 천천히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지만 하루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걷고, 조금씩 더많이 움직이고, 자전거를 타고
조금씩 식습관을 바꾸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 결과 체중은 120kg까지 줄었습니다.
무엇보다 숫자보다 더 기뻤던 것은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더욱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예전처럼 건강한 몸을 되찾기 위해 운동에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몸도 조금씩 변했고, 운동도 잘되는 몸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 인생은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길로 흘러갔습니다.
운동을 계속할수록 오른팔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근육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형외과와 신경과 통증의학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하지만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팔은 점점 말을 듣지 않았고, 힘도 빠져 갔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익산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가 끝난 뒤 영상의학과 원장님께서는 직접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체해서도 안 되고, 지체할 이유도 없습니다. 악성 뇌종양이 의심되니 지금 바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
제체할 시간이 아니여서 몇일뒤 서울아산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교모세포종 WHO 4등급.'
처음 듣는 의학용어들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순간 그것이 결코 가벼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몇일뒤 수술을 받게 되었고, 제 삶은 또 한 번 완전히 새로운 길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수술을 무사히 마친 뒤 저는 몸을회복하여 퇴원한후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어릴 적 교회를 다녔지만 20살부터 다니지 않던 교회에 20년만에 찾아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금 느껴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붙들고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도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회복시키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제 우편에 서서 저를 붙들어 주신다는 믿음 하나로 오늘도 하루를 살아갑니다.
사실 올해 7월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7월 8일에 자독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한날입니다 아버지의 칠순을 위해 모든 여행 준비와 예약들을 해뒀었지만
저희가족들은 여행을 갈수없었습니다 제주도가 아닌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제 마음 한편에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병을 겪으며 저는 수없이 많은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루지 못한 꿈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걷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
그 평범함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이제는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두렵습니다.
제 병이 얼마나 무거운 병인지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변해 가는 제 몸을 바라볼 때면 사람으로서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크게 붙잡으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내겠노라는 굳은희망입니다. 그래서 익산 중앙체육공원으로 가서 2시간씩 항암대비 운동을 하고있습니다
불편해진 오른쪽 팔과 다리때문에 계단 한개 올라가는것도 힘에부쳐서 울면서 운동을 하고있습니다
그럼에도 참아냅니다
하지만 병을 마주한 뒤 제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니, 한 가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마흔두 살이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이성과의 진실하고 진진한 사랑을 나누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프기전에는 그 사실이 크게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언젠가는 가정을 이루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삶의 끝자락을 생각하게 되자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연애를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의 기쁨이 제 기쁨이 되고,
그 사람의 눈물을 함께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손을 잡고 평범한 거리를 함께 걷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힘든 날에는 서로를 안아 주며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랑을 한 번쯤은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조건 없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게 처한 현실의 벽을 바라보면 그 소망은 너무도 불가능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눈물로 기도드립니다.
"제 삶이 끝나기 전에, 주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사람을 만나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 사람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저 또한 남김없이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라고요
사실 기도를 마친 뒤에도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서만은 아닙니다.
평생 한 번도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해 보지 못했고,
또 사랑받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저를 울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절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제 인생은 늘 불가능해 보이는 길 위에서 다시 시작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대학교를 포기했을 때도 끝인 줄 알았습니다.
꿈을 여러 번 접었을 때도 끝인 줄 알았습니다.
마음의 병으로 무너졌을 때도 끝인 줄 알았습니다.
150kg이 넘는 몸으로 거울 앞에 섰을 때도 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혼자의 힘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있었고,
좋은 선생님들과 저를 걱정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셨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믿어 보려고 합니다.
교모세포종이라는 병이 제 인생의 마지막 문장이 아니라,
새롭게 써 내려가시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일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가운데 지금 너무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고통이 결코 여러분의 모든 인생을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다 라고요
저 역시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꿈도 잃었고,
건강도 잃었고,
자신감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섭니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도 희망을 놓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8월5일부터 시작될 저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응원부탁드립니다
제 삶이 다하기 전에 진실한 사랑을 한 번 만나 볼 수 있도록 그 작은 소망도 함께
응원 해 주신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살아갑니다.
희망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차동님과 전주MBC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큰 감사를 드립니다
010-3838-2541 김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