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쇼 30주년 기념 우리사는이야기 양영숙씨 사연입니다.

우리 사는 이야기

〈 특집 : mbc fm 김차동의 모닝쇼 〉

 

양영숙

  나의 젊은 시절 mbc 모닝쇼는 안식처였다. 지체장애 4급으로 사회복지 시절 취사부의 삶은 고단했다. 이른 아침 별 보고 나와서 별 보고 돌아가는 하루의 일상 속에 아침 설거지 타임의 경쾌한 차동 님이 목소리는 청량음료와 같았다. 틈틈이 문자나 우리 사는 이야기에 글을 올리면 단 한번도 스쳐 지나지 않고 읽어 줄 때면 하루의 피로를 잊을 뿐 아니라 자존감까지 생겨 지금의 시 쓰기에도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내가 올린 글도 소개해 줘서 고마운데 차동 님이 친필로 보낸 격려의 글은 마치 연애편지를 받을 때의 설렘이었다. 친필과 함께 붙여온 상품권이나 꽃바구니를 받을 때의 기쁨은 어찌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것 같다.

 

  5000회 특집. 소리문화 전당 야외 공연장의 뜨거웠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30주년. 빗줄기 속에서 마지막 YB의 공연이 시작됐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으며 우리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앙코르를 외쳤고 빗줄기를 가르며 YB는 무대를 날아다녔다. 이런 열정으로 30년 동안 차동 님의 모닝쇼는 우리 애청자와 함께 숨 쉬고 있었나 보다. 김차동의 모닝쇼는 나의 버팀 목이었다.

  퇴직을 삼 년 앞둔 어느 해 빙판길에서 넘어지는 사고로 왼쪽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하고 입원했을 때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평상시에도 집을 떠나 객지에서 단체로 잠을 잘 때면 이구 동성으로 나의 코골이로 잠을 설쳤다고 떠들썩하곤 했다. 첫 번째 고관절 수술 후 입원한 병실에서도 잠이 들자마자 시끌벅적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병 고치러 병원에 왔는데 나의 코골이로 스트레스를 받아 병을 얻어 가게 생겼다며 잠자는 나를 깨웠다. 그 밤에 다른 병실로 옮겨 가라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나의 코골이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사연을 김차동의 모닝쇼에 보내고 우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 김차동의 모닝쇼를 통해 나의 코골이 사연이 소개되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차동 님의 친필로 쓴 격려의 글과 가족사진 상품권을 받으니 기쁨이 벅차올랐다. 모닝쇼에서 받은 가족사진 상품권으로 서울에 있는 세 딸 과 우리 부부는 가족사진을 찍어 거실 중앙에 걸어 놓았다. 지금도 거실 중앙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김차동의 모닝쇼는 어둠 속에 있는 내가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밝혀 준 30년이라 생각한다. 그 용기로 `그리움 하나 저만치 두고`와 `너는 어느 별에서 왔는가` 두 권의 시집을 출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가 보낸 부족한 사연을 담당 작가님은 아름다운 글로 다듬질해 주었고 차동 님은 때로는 다정하게 때론 힘찬 목소리로 용기를 더해 주었다. 지금처럼 청취자의 숨소리와 함께 할 때 mbc fm 김차동의 모닝쇼는 50주년도 함께 할 것이다.

  김차동의 모닝쇼는 나의 피난처였으며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