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자란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이 앞 유리창으로 다 보였다. 빗줄기가 틈이 없이 내리는 아침, 학교 앞에서 산이와 친구 아연이가 내렸다. 태풍 카눈으로 등교하지 않는 학교가 여럿 있는 분위기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안전 운전하라고 부탁한다. 산이는 8월 9일 수요일 개학을 했다. 그제 개학을 하고 어제는 비가 왔다. 그리고 지금은 금요일 아침이다. 짧은 여름 방학이었어도 짜임새 있게 그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실제로도 그랬는지, 그랬다면 고마운 일이다. 친구들하고 서울에 다녀오고 우리끼리도 하루 둘레길을 걸었으니까, 3주 방학이 서운하게 지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책을 좀 읽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마 거기까지는 산이에게도 벅찼을 것이다. 학원 수업이며 숙제를 하느라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았으니까. 방학은 어땠냐고 물어보고도 싶은데 새삼스럽게 뭘 그런 걸, 그러면서 쳐다볼 것 같다. 더 이상 산이도 아이가 아니다. 자기 생각과 의견, 가치관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무슨 일이든 형식과 절차가 요구된다. 갑자기 거절당하지 않으려면 미리 연습을 해야 한다. 무심코 지시하거나 강요하다 보면 반발하고 말 것이다. 하던 대로 하면 서로 불편해질 것이다. 자연이 소중한 것을 알지만 방치하거나 훼손하며 사는 것처럼 대화가 중요한 것도 알지만 좀처럼 그래본 적 없는 우리네 삶. 이런 것이 부조리 아닐까. 결국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기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듣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나는 이문세를 좋아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이문세를 아예 몰랐고 내가 이문세의 옛사랑을 부를 때 지금도 울컥거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묻고 답하는 일이 아니라 흘러나오면 듣는, 그러면 전부 노래가 된다.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그 모습이 된다. 산이는 개학을 했다. 오늘 사흘째다. 오늘도 6분 늦게 차에 올라탔다. 아마 2학기 내내 이만큼 늦을 것이고 나는 그때마다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한다. 내가 아는 이문세 노래는 아주 많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세상, 그럴 수도 있다.

조그만 강이도 (황소만 해졌다). 이 말은 강이가 들으면 안 되니까 아내와 이야기할 때도 아주 작게 한다. 조그만 강이도 여름 방학을 부지런히 보내고 있다. 가장 더운 날 걸었던 둘레길 10코스를 걷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은 강이뿐이었다. 길을 걷고 나면 얼굴이 깨끗해진다고 저도 놀라고 우리는 놀라는 척했다. 다음에 또 가볍게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다. 여드름이 자꾸만 번져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아, 노래가 또, 언제쯤 사랑을 더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더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우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수 없나요.

개학하기 전에 피부과에 가서 치료받고 가자는 말에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신경 안 쓴다는 투로 들리는 것이 오히려 내 신경을 거스른다. 아픈 것보다 예쁜 것에 더 관심 있는 것 아닌가? 혹시라도 예쁜 것에 피로해진 것은 아닌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나는 또 오지랖을 넓게 펼친다. 비가 땅을 가려서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아이가 세상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골고루 씨를 뿌리고 그 싹을 지키면서 가을 늦을 때까지 잘 데리고 다녔으면 한다. 그러다 흰 눈이 내리기라도 하면 눈 없는 세상에서부터 그림을 그려가다 아이 앞에서 커다랗게 눈사람 하나 생겨나게,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그런 노래도 불렀다가 별이 총총, 걸음도 총총총, 오래 걷는 밤을 맞기로 한다. 어떤 책이 가장 인상에 남았냐고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는 '가장'이라고 묻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너에게 끄덕인다. 나도 철이 들어간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데도.

방학이 끝났고 방학이 끝나간다. 내 방학은 어디에 뒀나. 내 방학은 너희, 산이 강이 아니었을까. 산이며 강이 있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방학 아니었을까. 서른쯤 먹은 너희들을 상상한다. 그때에도 그다음 언제든지, 나는 그럴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뚜르르르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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