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의 행복



천원의 행복

양영숙

 

   십여 년 전에는 남편이 운전하여 어머니와 종종 여행을 다녔다. 변산반도와 안면도, 대부도와 유달산 등을 여행할 때면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하셨다. 남편의 취미생활이 늘어나자 어머니와의 여행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까운 곳에 가서 외식도하고 오붓한 시간을 가지자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는 지인은 복지관에서 새만금 아트홀 티켓 두 장을 받아 부인과 다녀왔다고 나에게 자랑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남은 티켓 있으면 두 장만 달라 하니 며칠 후 한 장만 구했다며 주면서 어머니 모시고 가면 받아 줄 거라 했다. 티켓 한 장을 받아 들고 어머니의 편리한 시간을 맞추어 어머니와의 외출을 계획했다. 마침 남편이 다니는 시내버스회사에서 비응항에 배차가 되면, ○○반점 식권 2장을 주는데 시간이 없을 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대신하고 차곡차곡 모아 친척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우리가족이 외식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어머니 모시고 간다며 남편에게서 식권 두 장을 받았다.

   어머니는 딸과의 외출이 즐거운지 행복해 하셨다. 어머니의 기뻐하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뻤다. 식당에 도착하여 어머니는 삼선우동을, 나는 짜장면을 주문했다. 삼선우동을 처음 먹어 보시는지 연신 `이것 맛있다` 하신다. 맛있게 먹는 어머니의 모습이 한없이 기뻤다.

식사를 마친 후 식권 두 장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니 천원 만 더 내라 한다. 둘이 맛있게 먹었는데 천원 만 더 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잠시 후 바다 구경을 한 뒤 새만금 아트홀로 향했다. 새만금 아트홀은 바다를 안고 빨강색 지붕과 벽으로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티켓 한 장을 내밀자 어머니 모시고 왔으니 그냥 들어가라 했다.

   새만금 아트홀 공연은 아리울 쿡 창작뮤지컬로 음식점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 어머니한테는 근심덩어리 딸 이었는데 그 딸이, 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니 감회가 깊은 듯 `내가 네 덕을 다 본다`하는 것이었다. 내가 결혼하여 세 딸을 낳고 삼십여 년이 지난 즈음에 깨닫게 되었다. 나로 인해 가슴 아픈 날들이 많았을 어머니가 보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즐거웠는지 행복해하시며 찬송을 부르셨다. `지금까지 지내 온 거 주의 크신 은혜라`. 찬송을 부르다가 갑자기 먼저 간 동생이 그리웠는지 내가 기태만 안 죽었으면 대박인데하시는 것이다. 어머니의 아픔이 느껴졌다.

잠시나마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천원의 행복에 감사했다. 더 좋은 일들로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